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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평뉴스 대표 한우진 추석 인사말
오!양평뉴스 대표 한우진 추석 인사말 우리 조상님들 말씀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풍성한 결실로 모두가 행복한 시기를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양평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농협은행 양평군지부,양평군새마을회,양평군사회복지협의회,양평군생활개선회,대한적십자사 양평군봉사회,양평군자원봉사센터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군민에게 봉사하고 물품 후원하는 단체 회원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풀뿌리 지역 언론으로서 지역사회의 발전적 여론 형성과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노력하는 ‘오!양평뉴스’도 늘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를 시작하며 소망하신 일들 환한 보름달처럼 풍성하게 성취하시길 기원하며, 모든 군민 여러분들의 가정에 한가위처럼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항상건강하십시요! 오!양평뉴스 대표 한우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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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봉의 양평 역사탐방 3ㆍ1만세운동 2-(청운면·단월면)
신순봉의 양평 역사탐방 3ㆍ1만세운동 2-(청운면·단월면) 청운면과 단월면 3·1만세시위는 3월 23일 용두리 장날 오후 3시 40분 경 용두리장터에서 일어났다. 판결문과 경찰, 헌병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위는 이렇게 전개된다. 단월면 덕수리 출신 신재원(당시 60세) 지사와 단월면 향소리에 사는 정경시(당시 65세, 본적은 양동면 쌍학리) 두 지사는 청운면, 단월면 등지에 독립운동의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청운면 용두리장터로 가는 도중 단월면 부안리에 사는 김종학(당시 44세) 지사와 청운면 갈운리에 사는 민주혁(당시 50세) 두 지사를 만난다. 이에 만세운동의 목적을 알리고 권유하자 두 사람 모두 함께하기로 동의한다. 4명은 함께 여물리에 있는 다리 아래로 가서 밀담을 나눈 후 신재원 지사가 준비해 온 목면으로 깃발 3개를 만들고 거기에 김종학 지사가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글씨를 쓴다. 그 깃발 중 하나는 민주혁 지사가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할 목적으로 가슴에 품고 나머지는 신재원 지사, 김종학 지사가 하나씩 들고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에 도착한다. 이때 장터에 모여 있던 150여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한다. 총독부와 헌병대 등의 보고서에는 용두리장터 시위는 천도교도가 중심이었고 학생과 예수교도, 보통민(일반인) 등이 참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폭행 등 폭력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3명을 강제 연행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이는 시위대가 시가행진을 하고 헌병과 충돌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구속된 네 명의 지사와 3월 24일 갈산면(현 양평읍) 양근리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단월면 부안리 출신 곽영준(당시 21세) 지사 등은 모두 천도교도이다. 천도교 자료상으로 신재원은 천도교 양평교구 교구장이고 민주혁은 전교사(傳敎師)다. 곽영준 지사는 3·1운동 뒤 공선원(共宣員)에 피선된다. 나머지 두 분은 문서상 확인되지는 않는다(정용서의 글 <양평지역 3·1운동과 천도교> 참조). 향토사학자 이복재 선생은 "정경시 지사는 유림"이라고 확언한다. 정경시 선생 유사(遺事)를 보면 이 분은 독특한 삶을 산 분이다. 30대 때는 세 번이나 과거시험을 봤고 50대 때는 보통학교와 의숙(義塾)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65세 때 용두리장터 시위 주도, 67세 때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혐의 등으로 두 번의 옥고를 치른다. 나이가 들어서도 치열한 삶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가 단월면 향소리로 이사한 것은 1916년이었다. 향소리는 신재원 지사가 살고 있던 덕수리와 인접해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궁금한 것은 천도교도냐 아니냐 보다 청운면 용두리 시위와 천도교 중앙과의 연계 여부다. 천도교 전체 차원에서 어떤 결의와 지시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고 간접적 정황은 많다. 3·1운동 준비 및 실행과정에 많은 천도교도들이 시위를 조직하거나 자금을 제공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 그것이다(민족대표 33명 가운데 15명을 냈던 천도교는 14명의 민족대표가 구속되고 1명은 도중에 사망하는 피해를 입는다. 3·1운동 뒤 천도교는 엄청난 탄압으로 궤멸적 타격을 입는다). 이런 것을 볼 때 용두리장터 시위는 우연히 만나 결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한 것이 틀림없다. 이들 네 지사의 판결문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피고 등은 천도교 교도로서 동교 교주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경성 기타 조선 각 지역에서 조선독립운동이 발발하고 있음을 들어 알자 피고 신재원, 정경시는 정치변혁을 목적으로" 3월 23일 용두리 장날 만세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 두 지사의 상고 이유를 읽어보면 이 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거사를 일으켰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글이 길어지니 부득이 이쯤에서 줄인다. 사진1: 3·1운동 당시 용두리 지도.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사진이다. 사진2: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아도총차랑(兒島惣次郞) 조선헌병사령관(朝鮮憲兵隊司令官) 보고서. 사진3: 여물리와 용두리를 잇는 여물교. 아마도 이 위치에 옛 다리가 있었을 것이다. 사진4: 여물교 전경. 사진5: 용두리 삼거리 사진6: 단월면 덕수리 점골에 있는 신재원 지사 집터. 사진7: 향소리 교차로 모습. 정경시 선생이 1916년부터 1921년까지 거주한 향소리 사진8: 단월면 부안리 김종학 지사의 옛 집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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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 “내 동네는 절대 안돼?”
화장장, “내 동네는 절대 안돼?” 양평군이 70억을 투입해 오는 2023년 준공을 목표로 공설화장장을 추진한다. 좋은양평이제두 이에 따라 지난 7월, 지역대표와 전문가등이 참여한 ‘양평군 공설화장시설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10월26일부터 12월15일까지 공설화장시설의 최적 입지선정을 위한 건립후보지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양평군에서는 이에 앞서 20여년 전부터 선출직에 출마하려는 후보는 물론, 양평군에서도 몇 차례에 걸쳐 화장장 건립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번번이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고 말았다. 화장장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내 동네는 절대 안돼!”라는 님비현상 때문이다. 이번에 양평군이 추진하는 공설화장시설은 부지면적 3만㎡ 내외로 화장시설(화장로5기, 연면적 3천㎡), 봉안시설, 자연장지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건립후보지 유치신청은 건립후보지 해당지역의 총 세대주 60%이상 찬성지역의 대표자가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종후보지로 선정된 마을에는 마을발전기금 60억원(연차적지원)과 화장시설부대시설(식당, 매점, 장례용품 판매점, 카페 등)의 운영권 부여, 화장시설규모에 맞는 기간근로제 우선 채용 등의 인센티브가 제공되며, 유치지역 해당 읍·면민에 대해서는 화장수수료가 면제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화장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전국 화장률은 지난 2014년 79.2%에서 2019년 88.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양평군의 화장률도 2014년 77.1%, 2018년 85.8%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의 화장시설은 55개소에서 60개소로 5개소 증가하는데 그쳤다. 화장장수수료도 관내와 관외를 구분해 심하게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성남시 화장장의 경우, 관내 주민은 5만원, 관외 사람들에게는 20배인 100만원을 받고 있다. 다른 지역 화장시설도 비슷한 수준이다. 양평군민들도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 원정화장을 치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원주, 성남, 춘천지역 화장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 양평군이 이번에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공설화장시설 등과 같은 혐오시설은 혜택은 전체가 골고루 누리지만, 부담은 주변 지역주민들에게 집중되는 게 혐오시설의 특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자기가 사는 지역에 이러한 시설이 들어서는 데에는 반대하는 님비(NIMBY)현상을 넘어, 오히려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수익성 사업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고자 하는 핌비(PIMBY)현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 기왕에 화장장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화장장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드리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이와 함께 20년 해묵은 사업을 추진하는데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인내를 가지고 추진하기 바란다. 좋은양평이제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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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봉의 양평역사 탐방 3·1만세운동 양평읍1
- 신순봉의 양평역사 탐방 3·1만세운동-3-(양평읍1) 양평읍(당시 갈산면) 양근리 만세시위는 3월 24일 오후 2시에 시작되었다. 이날은 양평장날이었다.하루 전 경성(京城)을 출발해 양평에 온 연희전문학교 서기(書記) 이신규(20세)는 양근리장터 큰 도로에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들 앞으로 다가가 연설을 시작한다."조선 민족은 이 기회를 틈 타 일본제국의 굴레를 벗어나 독립할 수 있다."대략 이러한 요지를 연설을 마친 그는 <독립선언서>와 대한독립회 명의로 된 <격문(檄文)> 수십 매를 품에서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격문에는 이런 글이 씌여 있었다. "독립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맹렬히 분기하여 민족자결을 하고 독립의 깃발을 높이 올려 형벌 중에 있는 형제, 자매를 구하고 역적의 무리를 촌단(寸斷)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자. 동포여! 이 시기를 잃지 말고 독립의 깃발을 나부끼며 용기 있게 일어나 독립하자!" 그런 뒤 이신규는 먼저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군중이 제각각 태극기를 꺼내더니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이때 용문면 삼성리에 사는 곽영준(21세)이 군중의 선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이신규를 돕는다(이신규와 곽영준은 가까운 친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최소한 미리 약속하고 움직였을 수도 있다. 천도교도인 곽영준은 전날(23일) 청운면 용두리장터 시위를 이끈 신재원의 사위이기도 하다. 곽영준은 단월면 부안리에서 태어났다).약 1,000명의 군중은 점차 열광적으로 바뀌어 갔고 이신규와 곽영준이 이끄는 대로 시장 안을 행진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시위가 무르익어 갈 즈음(오후 2시 40분 경) 일본 헌병 스즈키(鈴木)가 나타나 이신규와 곽영준을 체포해서 양평헌병분견소로 끌고가는 사태가 벌어진다.이에 격앙된 군중이 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며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헌병 한 명이 총을 겨눴다. 분견소 안으로 들어갔던 군중은 어쩔 수 없이 일단 뒤로 물러났다. 한편 이날 집회에 동참했다가 크게 공감한 400여 명의 시위대는 자전거수리업을 하는 한창호(23세), 농업인 김경성(32세), 우편소사무원 서상석(19세), 요리점직원 김석봉(20세), 농업인 한봉철(22세. 이 분은 훗날 만주로 가서 무장투쟁을 계속한다), 농업인 이용준(37세) 등이 선두가 되어 양평군청과 갈산면사무소, 양평우편소, 헌병분견소 등을 돌며 계속 시위를 벌인다.군청에는 약 50명의 시위대가 밀고들어갔으나 군수가 자리를 피해 도망간 것을 알자 되돌아 나온다.시위대는 다시 갈산면사무소(현 양평읍사무소)로 이동해 면장 김찬제를 밖으로 끌어낸다. 면사무소에는 20~30명이 들어갔다(이들은 면장과 면서기 서병일에게 함께 만세 부를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증인들은 이 과정에서 면사무소 유리창 일부가 파손되고 면장 김찬제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오후 5시 경 의사로 추정되는 박희영의 집에 가서 군수와 면장을 찾아봤으나 찾아내지 못하고 되돌아 나온다.시위대는 다시 신현은의 집으로 몰려간다. 결국 그곳에서 피신해 있던 군수와 면장을 찾아낸다. 그러자 시위대는 이 둘을 앞세우고 다시 헌병분견소로 간다(아마도 체포되어 구금된 이신규와 곽영준을 풀어달라는 요청에 군수와 면장을 앞세울 요량이었을 것이다).그러나 헌병들의 보고서에도 나와 있듯이 헌병들은 "고압적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킨다. 여기서 '고압적'이라는 것은 총검을 사용한 무력 진압을 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10여 명이 체포됐으며 그중 7명이 구속된다(이용준 지사는 만주로 피신했다가 몰래 귀국해 전북 전주군 삼례에 숨어 있다가 나중에 검거되어 구속되었다). 당일 사망한 사람은 2명이다. "친일 경찰 원수연이 양서면 정아무개 씨 포함 2명을 사살했다. 원수연은 친일한 공로로 광주(廣州)경찰서장을 역임하고 그 동생은 양평우체국장을 지냈다."(<양평3ㆍ1운동사> 132쪽 참조함).이날 시위는 저녁 늦게서야 끝났다. 한창호 지사의 판결문에는 이날 만세시위 참가자 수가 들쭉날쭉이다.곽영준 지사 부분에선 약 2,000명의 군중과 만세를 외쳤다 하고 한봉철 지사 부분에선 약 3,000명의 군중과 만세를 외치고 광분했다는 식이다. 어쨌든 이날 시위에는 성미(봉성리 마을), 원당리(현 원덕리), 회현리, 창대리, 오빈리, 도곡리 등 갈산면 각 마을에서 많은 주민들이 참가했다고 전한다.3월 24일 양근리 만세시위를 이끈 위 지사들의 면면에 대해서는 부득이 다음 회로 미룬다. 사진1. 당시 주요 시위지를 표시한 지도. 현재 위치와 많이 다르다. 헌병분견소 자리에는 양평경찰서가 있고 갈산면사무소 자리에는 양평군청이 있다.위 지도에 나오는 군청 자리는 현재 양평역 인근이고 우편소 자리는 양일고 인근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 지도의 정확성에 대한 사실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판결문 중에는 우시장 인근에 갈산면사무소가 있다고 나온다. 사진2. 양평물맑은시장 안에 옛 양근리 장터가 있다. 사진3. 현재의 양평장터. 사진4. 옛 양근리장터 옆 큰길. 이곳에서 집회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5. 큰길과 옛 장터를 잇는 길. 사진6. 양평삼거리. 사진7. 이신규, 곽영준 등의 판결문. 사진8.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고등경찰과 보고서. 양평군 갈산면 만세시위 관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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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봉의 양평역사 탐방 3·1만세운동 양평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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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경제훈련1 김종필 칼럼
- 자녀의 경제훈련1 물고기를 잡는 법부터, 물고기를 키우는 법까지 인생 2막, 자녀 리스크를 줄여라.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자산을 모으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수입을 늘려봤자, 지출이 통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계획적인 소비를 습관화하고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것을 억제해야 하는데 이미 몸에 굳어진 습관이 어디 그렇게 쉽게 고쳐지는가.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적절한 경제훈련을 시키지 않은 채, 오직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낌없이 퍼붓는 것이 교육적으로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아 결혼시킬 때까지 드는 비용이 아들은 3억 5500만원, 딸은 3억 3900만원이라고 한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교육비다. 대학 등록금이 연평균 640여 만 원으로 해마다 오르고 있다. 이 외에도 중고교 무렵에 지출되는 사교육비는 또 얼마나 가계에 부담이 되던가. 책값이나 교통비 등을 비롯한 용돈까지 생각하면 1년에 족히 천 만 원은 필요하다. 자녀교육비의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소득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반드시 지출되는 비용이라는 것이다. 고소득층의 부유한 가정이야 이 액수가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소득 여하를 막론하고 중하위 계층에게마저 같은 비용이 필요하니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끼게 된다. 돈이 없어 자식을 마음 놓고 가르치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의 부모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고소득층이라고 해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더 많은 교육을 시키고픈 욕구가 있으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담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덕분에 출산율은 점차 낮아진다. 과거엔 자기 밥그릇은 손에 쥐고 태어난다고들 했지만, 이제 새빨간 거짓말이고 무책임한 말임을 누구나 안다. 솔직히 다자녀 시절에 흔히 들려왔던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이 땅의 누나와 언니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던가. 자녀가 많을수록 장녀와 형제 모두에게까지 기회의 박탈과 선택의 자유마저 줄어들게 되니 무턱대고 낳는 것이 썩 좋은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린 낮아진 출산율로 한 자녀를 낳고, 자녀가 하나라는 이유로 아낌없이 무엇이든 지원하고 있다. 여럿의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차라리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말이다.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던 시절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고 외쳤었다.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그러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아낌없이 지원해준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이 과잉보호와 물질비만에 빠졌다. ‘잘 키우자.’는 말이 넘치게 키우자는 말은 아니었을 텐데 형제 없이 크는 한 자녀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킨 탓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걸고 한 자녀에게 ‘넌 나의 미래’라고 외치는 상황이다. 심한 경우 부모의 것인지 자녀의 것인지 모를 꿈을 강요하기도 한다. 아낌없는 지원과 애정은 ‘가난이 주는 상처’를 모르고 크게 하는 대신 왜 절약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생선은 머리가 맛있다며 살만 발라주었더니, 다 큰 아들이 아내에게 “우리 엄마는 원래 생선 머리만 드셔.”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가난해서 자식에게 살만 발라주었더니 그것이 엄마의 사랑이고 배려였음을 몰랐다는 이 이야기는 웃자고 만든 것일지 모르나 너무 퍼붓는 사랑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님을 알게 한다. 습관이 무서운 이유는 성인이 된 후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원하면 무엇이든 사주는 부모님, 애 울리지 말라며 거드는 조부모의 사랑이 정말 백해무익함을 알아야 한다. 성인이 된 자녀가 저축을 모른 채 과소비와 충동구매에 허덕이고, 니트족이 되어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해보아야 소용없다. 그러면서도 지갑을 열어주고, 없으면 빌려서라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던가. 부모도 자녀도 나쁜 습관을 스스로 버려야 한다. 그리고 어린 자녀들에게는 올바른 습관을 만들어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 실패하지 않도록 성공의 기본기를 잡아주어야 한다. 요즘 법원경매장에 가보면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주택이 경매물건으로 나온 경우가 많다. 취업이 힘들다는 자녀에게 창업을 지원했다 낭패를 보았거나,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채 가계 빚에 허덕이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가 허다하다. 설령 취업에 성공했다하더라도 결혼자금으로 많은 빚을 지어 내몰린 경우도 있다. 부모입장에선 거주하면서 주택연금으로 사용이 가능한 주택이 경매로 처분된다는 것은 심각한 은퇴리스크다. 이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 퇴직금까지도 창업자금이나 결혼자금으로 유용되는 것은 온가족이 공멸로 빠져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마음이 약하고 정에 흔들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결정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자녀의 일이다. 부탁을 해오면 딱 부러지게 거절하기 쉽지 않다. 내게 이런 일은 없겠지 생각하고 마음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당연히 온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자녀에게는 올바른 경제교육을, 부모는 안정된 노후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택은 준비된 나의 은퇴자금임을 잊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또한 창업자금이나 결혼자금 지원에 대한 요청을 하면 부모의 재정 상황을 이야기하고 지원한계를 분명히 하자. 체면을 버리고 부모의 상황과 현실을 서로 공유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인생2막 은퇴시점에 급격한 재정변화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무설계 전문회사 미래희망가정경제연구소 / www.mheri.org 김종필 책임연구원, CFP(국제공인재무상담사) 배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Certified Financial Planner 국제공인재무설계사 증권(펀드)투자상담사 일임/자문 투자 상담사 퇴직연금 상담사 미래희망가정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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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경제훈련1 김종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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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 사는 것이다.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 주식은 사는 것이다.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관행이 문제다. 자산운용사는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대부분의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의 현실은 고객은 뒷전이고 회장과 사장이 우선이다. 고객이 우선이다. 매매회전율이 낮다. 미국의 중산층은 주식 투자로 만들어진 계층이다. 한국 아줌마들의 금융지식 수준은 미얀마, 콩고 수준이다. 모든 걸 자식 교육에 올인하다보니 65세 이상의 50%가 빈곤층이다. 서울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노인들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경제 수준을 높이지 않은면 빈곤이 세습된다. 자식한테 쓰는 과외비가 가장 큰 문제다. 자녀들을 부자로 만들고 싶지 않는가? 자본주의는 노동과 자본이다. 우리의 자녀를 월급쟁이로만 키우고 있다. 과외비를 주식에 투자시켜라. 부자는 회사를 소유한 사람이다. 그리고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고급 승용차를 몰면서 부자처럼 보일려고 하다보니 가난하다. 늙어서도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월급에 10%를 주식에 투자래하. 소비를 투자로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주식은 그 기업과 동업하는 것이다. 워렌버핏처럼 투자해라. 안정된 직업 특히 공무원이 가장 불안한 직업이다.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자산이 예금이다. 절대 늘어나지 않는다. 원금보장이라는 말은 미국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을 일하게 해야 한다. "자식은 예정된 배반이다"라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돈 없는 늙은 부모를 찾아오는 자식은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30%는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식들은 부모를 도와줄 수 없다. 자녀 사교육비에 등허리가 휘기 때문에 늙은 부모 부양할 돈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식을 사줘라. 그 자본금으로 자녀가 졸업할 때 창업을 고민하게 해줘라! 맥주 마실 돈으로 잘 팔리는 맥주회사 주식을 사라! 신혼 여행 해외로 가지말고 제주도로 가라. 아낀 돈으로 주식 사라! 자동차 사지말고 자동차 회사 주식을 사라! --------------------------------------- 대한민국 최고의 재무설계 전문회사 미래희망가정경제연구소 / www.mheri.org 김종필 선임연구원, CFP(국제공인재무상담사) 배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Certified Financial Planner 국제공인재무설계사 증권(펀드)투자상담사 일임/자문 투자 상담사 퇴직연금 상담사 미래희망가정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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