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08(화)

신순봉의 양평 역사탐방 3ㆍ1만세운동 2-(청운면·단월면)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1.05.08 09:48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신순봉의 양평 역사탐방 3ㆍ1만세운동 2-(청운면·단월면)

 

청운면과 단월면 3·1만세시위는 323일 용두리 장날 오후 340분 경 용두리장터에서 일어났다.

판결문과 경찰, 헌병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위는 이렇게 전개된다.

  

단월면 덕수리 출신 신재원(당시 60) 지사와 단월면 향소리에 사는 정경시(당시 65, 본적은 양동면 쌍학리) 두 지사는 청운면, 단월면 등지에 독립운동의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청운면 용두리장터로 가는 도중 단월면 부안리에 사는 김종학(당시 44) 지사와 청운면 갈운리에 사는 민주혁(당시 50) 두 지사를 만난다. 이에 만세운동의 목적을 알리고 권유하자 두 사람 모두 함께하기로 동의한다.

 

4명은 함께 여물리에 있는 다리 아래로 가서 밀담을 나눈 후 신재원 지사가 준비해 온 목면으로 깃발 3개를 만들고 거기에 김종학 지사가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글씨를 쓴다.

그 깃발 중 하나는 민주혁 지사가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할 목적으로 가슴에 품고 나머지는 신재원 지사, 김종학 지사가 하나씩 들고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에 도착한다.

이때 장터에 모여 있던 150여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한다.

 

총독부와 헌병대 등의 보고서에는 용두리장터 시위는 천도교도가 중심이었고 학생과 예수교도, 보통민(일반인) 등이 참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폭행 등 폭력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3명을 강제 연행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이는 시위대가 시가행진을 하고 헌병과 충돌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구속된 네 명의 지사와 324일 갈산면(현 양평읍) 양근리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단월면 부안리 출신 곽영준(당시 21) 지사 등은 모두 천도교도이다.

천도교 자료상으로 신재원은 천도교 양평교구 교구장이고 민주혁은 전교사(傳敎師). 곽영준 지사는 3·1운동 뒤 공선원(共宣員)에 피선된다. 나머지 두 분은 문서상 확인되지는 않는다(정용서의 글 <양평지역 3·1운동과 천도교> 참조).

 

향토사학자 이복재 선생은 "정경시 지사는 유림"이라고 확언한다.

정경시 선생 유사(遺事)를 보면 이 분은 독특한 삶을 산 분이다. 30대 때는 세 번이나 과거시험을 봤고 50대 때는 보통학교와 의숙(義塾)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65세 때 용두리장터 시위 주도, 67세 때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혐의 등으로 두 번의 옥고를 치른다. 나이가 들어서도 치열한 삶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가 단월면 향소리로 이사한 것은 1916년이었다. 향소리는 신재원 지사가 살고 있던 덕수리와 인접해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궁금한 것은 천도교도냐 아니냐 보다 청운면 용두리 시위와 천도교 중앙과의 연계 여부다. 천도교 전체 차원에서 어떤 결의와 지시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고 간접적 정황은 많다.

 

3·1운동 준비 및 실행과정에 많은 천도교도들이 시위를 조직하거나 자금을 제공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 그것이다(민족대표 33명 가운데 15명을 냈던 천도교는 14명의 민족대표가 구속되고 1명은 도중에 사망하는 피해를 입는다. 3·1운동 뒤 천도교는 엄청난 탄압으로 궤멸적 타격을 입는다).

이런 것을 볼 때 용두리장터 시위는 우연히 만나 결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한 것이 틀림없다.

 

이들 네 지사의 판결문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피고 등은 천도교 교도로서 동교 교주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경성 기타 조선 각 지역에서 조선독립운동이 발발하고 있음을 들어 알자 피고 신재원, 정경시는 정치변혁을 목적으로" 323일 용두리 장날 만세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 두 지사의 상고 이유를 읽어보면 이 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거사를 일으켰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글이 길어지니 부득이 이쯤에서 줄인다.

 

 

사진1.jpg

              사진1: 3·1운동 당시 용두리 지도.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사진이다.

 

사진2.jpg

          사진2: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아도총차랑(兒島惣次郞) 조선헌병사령관(朝鮮憲兵隊司令官) 보고서.

 

사진3.jpg

            사진3: 여물리와 용두리를 잇는 여물교. 아마도 이 위치에 옛 다리가 있었을 것이다.

 

사진4.jpg

 

          사진4: 여물교 전경.

 

사진5.jpg

     

         사진5: 용두리 삼거리

      

           사진6.jpg          사진6: 단월면 덕수리 점골에 있는 신재원 지사 집터.

 

사진7.jpg

          사진7: 향소리 교차로 모습. 정경시 선생이 1916년부터 1921년까지 거주한 향소리

 

사진8.jpg

         사진8: 단월면 부안리 김종학 지사의 옛 집터.

 

       


 

 

.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 05987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신순봉의 양평 역사탐방 3ㆍ1만세운동 2-(청운면·단월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